H. Won Tai Chi Institute

 

내가 본 주진순 사부님과 김효원씨

이글을 쓰게 된데는 현재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태극권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태극권에 문외한이었던 제가 점차적으로 태극권을 바라보는 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여러분들에게 몸소 보고 경험한 얘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1988년 올림픽이 끝난 직후 독학한 영어회화를 보다 실용적으로 배우기 위해 종로외국어 학원에 아침 7:00 시 반을 등록했는데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머리가 하얗게 새고 수염이 무척 긴 나이가 지긋하시고 수업도중에는 절대로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한 엄격한 영국인 할아버지가 그 수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또한 당시 형편상 나는 법대 4학년 과정을 휴학하고 신설동에 위치한 국제전화국(수동식으로 국제전화연결) 에서 12:00 자정부터 새벽 4시 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광화문 한국통신 6층에 위치한 국제 전화국에서 9시부터 실시되는 자동식으로 전화를 연결하는 컴퓨터 교육을 받아야 했다. 4시 이후부터 9시 사이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 종로 외국어 학원 아침반에 등록하게 되었고 신설동 국제전화국에서 나와 종로 2가 웬디스(Wendy's)에서 졸음을 이기기 위해 매일 아침 6시 45분경 커피를 마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매일 그시간 때 쯤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 2인용 식탁에 앉아서 모닝커피와 더불어 영자신문을 읽고있는 한남자가 눈에 들어왔는데 머리는 조직깡패 마스크 처럼 아주 짧았으며 이목구비가 서양인처럼 뚜렷했고 인상은 차가와 보이는 그러면서 역기를 드는 사람처럼 몸은 근육질로 가득찬, 동양인 치고 상당히 체격이 건장해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보니 고려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재미교포였다. 당시 나는 그사람을 2개월 여가 넘게 지켜 보았는데 다른 남자 선생님과는 달리 여학생들이나 기타 다른 학생들 또한 다른 선생님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거의 볼 수 가 없었고 또한 아침에 웬디스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창가에 눈길을 돌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신문만 보고 커피를 마시고 나면 그자리에서 칼처럼 일어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이글을 읽으시면 웃으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내 인생을 맡겨도 될 만한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요즈음, 속된말로 내가 그사람을 내 인생의 반려자로 찍은 것이다. 자기과신과 허풍이 심한 많은 한국 남자들에 비해 말 수 가 거의 없고 사교적이지 않는 그 모습이 매우 듬직해 보였다. 그 후 나는 그사람의 수업을 확인하여 그 클래스에 들어갔는데 성함이 김효원(미국명 Julius Kim)으로 학생수는 8명 정도로 별로 많지 않았다. 학생들 하고는 선생님과 학생사이를 떠나 매우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 중 한 남학생은 선생님과 나와의 결혼식의 사회자가 되기도 했는데 아직도 여전히 그 학생하고는 형님 아우 하는 사이로 연락을 하고 있다. 알게된지 얼마 되지 않아 1988년 그해 12월 30일날 나에게 결혼 신청을 했고 나는 웃으면서 가정형편상 나하고 결혼할려면 최소한 6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정말로 효원씨는 횟수로 보아 6년정도를 기다렸다. 당시 나는 효원씨의 나이를 많게 잡아 26세 정도로 보았는데 사귀고 한참을 지나 알아보니 그때 나이가 벌써 33세였다니 내가 속아도 한참 속았다. 당시 효원씨는 어디를 가든지 끊임없이 손을 이리저리 빙빙 돌리거나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곤 했는데 심지어 운전을 할때도 양손을 번갈아 가면서 항상 그런 손동작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손힘을 강하게 하기위한 태극권의 수련방법이라는 것을 그당시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1988년 10월 중순-1990년 1월)김효원씨를 만날 무렵 한국에는 태극권이란 무술의 보급이 거의 없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는 생소한 것이었다. 저와 date할 때 때때로 효원씨는 남산 도서관 근처 공원에 가서 태극권을 수련했고 그런 효원씨의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 효원씨는 서양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보통의 동양인에 비해 체격이 상당히 좋았는데 그런 분이 눈으로 보기에는 믿기 어려운 이상한 동작, 어떻게 보면 무용하는 것 같고, 또 어떻게 보면은 무언가 사람을 잡아당기는 강력한 흡인력 같은 것이 일정한 흐름을 타고 느껴지는데 무용은 아닌 것 같고, 아뭏든 느리면서도 강하고 그러면서 동작이 매우 우아해 보여 효원씨의 체격과는 어울려보이지 않아 한참동안을 웃었고 그냥 운동삼아 하는 체조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효원씨는 다리가 약해서 조금만 걷거나 서있으면 금방 다리에 쥐가나고 자주 저리는 나를 보고 특히 다리를 강하게 해주니 자기가 하는 그운동의 일부를 가르쳐주기 시작했고 나중에 그것이 태극권이라고 알려주었다. 학생들 가운데 유독히 가까운 남/여학생 6명 정도에게 1989년 봄에 종로 3가 단성사 길목 안 어디에 위치에 있는 작은 사찰에서 모여 태극권형 일부를 가르쳐주곤 했는데, 사찰에서 태극권을 학생들과 수련하고 있을때 그 근처에서 사는 어린 남자 아이(12세)도 신기했던지 더불어 배우곤 했다. 그러나 그당시 나는 효원씨가 가르쳐준 태극권을 수련할 수 가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나의 경우는 이상하게도 태극권형만 수련 하면 가슴이 더 답답해지고 신경질이 나고 괜히 화가 나는등 굉장히 신경이 예민해져 조금이라도 수련하면 그날은 평상시의 내가 아니라 안절부절 못하는 신경 쇠약 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극권형을 다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태극권형 수련을 두려워하게 되어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효원씨도 그런 나를 보고 굉장히 당황했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수련을 반복해서 하면 자연스럽게 적응한다는데 나의 경우는 수련을 하면 할 수록 그 정도가 심해져서 효원씨도 나보고 당분간 태극권형 수련을 중단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하였다. 당시 효원씨는 태극권 수련한지 6년이 조금 지난 아직도 초보자였으므로 말은 들었지만 나같은 경우는 실제로 처음본다고 하였다 . 많은 사람들은 태극권을 수련하게 되면 신체가 편안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의경우는 태극권수련의 좋은 면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

어느날 학생중의 한명이 신문 광고란에 나온 태극기공회(종로3가 어느곳에 위치)란 표지를 가져왔고 효원씨는 한국에도 태극권 하는 사람이 있나보지 한번가서 보고 싶은데 하며 그곳엘 찾아가 보았고 알고보니 태극이란 말만 동일하지 태극권을 말하는것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때 당시 효원씨는 한국에서 사용되는 태극이란 말이 태극권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고 하였다. 그후 효원씨는 태극기공회의 민xx 분께 기본 태극권형을 가르쳤다.

1990년 1월에 효원씨는 미국으로 들어갔고 한국 방문시 때때로 효원씨는 남산 도서관 근처의 연인들의 휴식처로 보이는 많은 벤취가 있는 공원에서 태극권을 수련하곤 했었는데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한여름 어느날 40대 중반 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여지는 어떤 남자분이 효원씨에게 몇번 다가와 자기도 효원씨가 하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효원씨가 그분에게 몇수를 가르쳐 준것을 보았다. 그분은 한의학을 공부하신단 분이었다. 솔직히 나는 그때 태극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구체적으로 태극권이 무엇인지 또한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1993년 4월 결혼 바로전 4박5일간 나와 효원씨는 주사부님 둘째 아드님인 Vincent씨와 도장 수련생인 Peter Hunt씨, Phil Dea씨와 함께 엽태덕 사백님을 뵙기 위해 홍콩을 방문했고 엽태덕 사백님과 방사숙님을 비롯한 다른 중국인들과 더불어 양수중 사공님 묘소를 참배했다. 홍콩에서의 4박 5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Vincent씨와 부인인 Cindy 씨를 비롯하여 Peter Hunt씨, Phil Dea씨들이 우리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3박4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그분들은 신사동 삼화호텔에 투숙했었는데 체류기간동안 매일 아침 그분들은 현대아파트 뒤 강변에서 정통 양가 태극권을 수련했고 교통체증이 심한 아침출근길의 많은 사람들이 수련 모습을 차창을 통해 구경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서도 그것이 정통 양가 태극권인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결혼 후 효원씨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1993년 7월 초 효원씨를 만나기 위해 2주간의 일정으로 보스톤을 방문하여 그때 주사부님 도장에 가서 인사를 드렸는데 주사부님및 모든 문하생들이 효원씨와 저와의 오랜기간의 사귐을 다 알고 있었고 도대체 저 무뚝뚝한 효원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국여성이 누군지 무척이나 궁금했다며 굉장히 환대해 주었으며 전체적으로 도장 분위기가 온화해 보였다.다른 한편으로 문하생들 사이에서 효원씨의 존재가 상당히 부각되어 있는 것도 알 수 있었고 많은 문하생들과 주사부님은 “He is very strong” 이라며 효원씨를 칭찬해 주었다. 주사부님과 아드님을 비롯하여 문하생들 모두가 효원씨가 거의 도장에서 살다시피 태극권 수련에 열심이었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는데 그말은 내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효원씨를 믿고 걱정말라는 의미였다. 당시 문하생중의 한명이 뉴햄프셔(New Hampshire)자택으로 문하생들을 초청하여 바베 큐 파티를 열었는데 거기에 저도 효원씨랑 같이 참석했다. 가보니 40명정도의 인원이 초청한분의 자택 테니스 코트에서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었고 당시 나의눈에는 모두가 이성을 잃은 태극권에 미친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모였다 하면 태극권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한가지 재미 있는것은 그들 가운데 동양인은 효원씨를 포함하여 5명 정도 뿐이였다. 동양의 사상을 이해하기 힘든 서양인들이 그렇게 태극권을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이 그때까지 내가 생각해오던 서양인들에 대한 나쁜 선입관(끈기가 없고 너무 개인주의적이다)을 일소해 주었다. 평소에 말이 없던 효원씨도 태극권에 대해 동료들과 끊임없는 말을 하는 모습이 내게는 상당히 생소했고 태극권에 관련하여 효원씨의 다른 일면을 보는것 같았다. 2주간의 방문 기간동안 나는 태극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내가 주사부님 도장에서 본 문하생들의 수련모습은 한마디로 이상해 보였고 다들 사기꾼 아니면 비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치부하고 태극권에 대한 관심자체도 두지 않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1995년 7월초에 미국으로 온후 나는 효원씨의 체격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1988년 처음 내가 본 근육질의 효원씨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그때에 비해 몸이 다소 말라 보였다. 하지만 키와 체격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듯 보기가 참 좋았다. 효원씨에게 살이 많이 빠진것 같다고 하였더니 아마 근육살이 빠져서 그럴거라고 하였다. 효원씨는 동양인으로써는 처음으로 고등부 미식축구 Line Backer 수비수로써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는데 체격좋은 다른 미식축구 선수에 뒤지지 않기 위해 역기를 들기 시작했고 태극권을 수련하면서도 1990년 1월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역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에 온 이후 태극권 진보가 더뎌지고 배우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어 역기를 드는것을 중단해서 그렇게 보일거라고 했다. 태극권을 수련한지 6년이 이 지나도록 효원씨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역기를 드는 것이 태극권수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큰 오류였다고 나중에 나에게 말해주었다. 역기를 통한 근력의 강화는 태극권에서 의미하는 근육강화의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방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한참후에 깨달았고 태극권은 절대로 다른 외공무술적 훈련방법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이때 깨달았다고 한다. 주 사부님 문하생중에는 16년이 넘게 가라데를 수련하고 몇개의 가라데 도장까지 운영했던 한 미국인 가라데 사범이 주 사부님을 만나 태극권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현재 사부님 문하생중 가장 오래 태극권을 수련하고 있지만(현재 29년넘게 태극권 수련) 가라데를 향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가라데와 동시에 태극권을 수련했는데 수련 연수 에 비해 태극권의 진보가 상당히 더디었고 가라데 5단까지 따고 가라데 6단을 받기 위해 일본에 갈려고 한 계획을 중지하고서야 가라데 수련을 중단했다하면서 자신은 그에 비해 그나마 빨리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또한 당시 효원씨는 1990년 1월부터 내가 완전히 미국에 입국한 1995년 7월 초까지 하루에 최소한 8시간 이상 강훈을 해왔다고 주위사람들이 말했다. 동료들은 효원씨가 저하고 결혼 하지 않았으면 태극권하고 결혼 했을 거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웃으면서 나에게 말하곤 했다.

1997년 10월 태극권 도장을 뉴욕에 개관하기 전까지 거의 매일 효원씨는 보스톤 차이나 타운에 위치해 있는 타이치 클럽에 가서 주진순 사부님으로부터 별도의 개인지도를 받고 있었고 개인지도가 아닌 일반 수련시간에는 도장에서 계속 해서 다른 수련생들과 더불어 열정적으로 수련하고 있었다. 처음에 제가 별로 태극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효원씨는 전혀 저에게 자기가 수련하고 있는 태극권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거의 매일 도장에 수련하러 갈때는 항상 저를 동반하고 갔었다. 주사부님이 효원씨에게 행하는 특별개인지도 수련시간은 참관할 수 없었지만 일반 수련시간은 거의 매일 참관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생소했다.

제가 본 주사부님은 키가 남자키로는 상당히(160cm-165cm) 작았고 배가 많이 나왔으며 말 수가 별로 없으셨지만 키에 비해 몸은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좀처럼 웃진 않으셨지만 주사부님의 인상은 참 좋았다. 주사부님은 예의바른 동양적인 인사를 참 좋아 하셨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효원씨가 수련이 끝날때까지 구경만 하거나 도장에서 나와 혼자 도장 주변을 산책하곤 했다. 도장 안이나 도장 밖에서 기본태극권형을 수련하는 사람들, 태극도/검을 수련하는 사람들, power추수/타수를 수련하는 사람들, 산수를 수련하는 사람들, 참정공을 수련하는 사람들, 손과 손을 마주대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walking(걷는다고 보기에는 빠르고 뛴다고 보기에는 느려보이는)하는 분들, 봉을 가지고 수련하는 분들등 그야말로 각자 자신의 수련단계에 맞추어 열심히 수련하고 있는 모습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서양인들은 동양인에 비해 인내심이 약하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여기에서 수련하신 분들은 정말로 진지했고 정말로 태극권이 좋아서 몇시간이고 수련하는 모습에 내 눈에는 별거 아니게 보이는데 왜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정적으로 수련하는지 알고 싶어 지면서 점차적으로 태극권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 주사부님이 학생들에게 power 타수/추수를 수련시키는데 그 조그만 체구로 체격이 훨씬크고 우락부락한 미국인들을 힘하나 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여러명의 학생들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어떤학생들은 심지어 주사부님과의 접촉도 없는데 주사부님의 손의 움직임이나 몸의 방향에 따라서 아무런 힘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지만 또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인간이 만지지도 않고서 다른 사람의 동작을 control할 수 있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 효원씨에게 여기 도장 오는 사람들은 다 사쿠라 같다고 했더니 효원씨는 그저 당신은 태극권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주사부님은 학생들에게 양손을 모와 사부님 어깨에 대게 한다음 학생들로하여금 사부님을 밀게하거나 때로는 사부님이 학생을 아무런 동작없이 튕겨내기도 했고 또한 사부님과 학생이 서로 대련하는 것처럼 양손을 원형을 그리듯이 손을 움직이면서 학생을 힘하나 안들이고 도장 바닥에 내동댕이 치거나 펑펑 튕겨 내곤 하였다. 한여름에도 사부님은 학생들을 수련시키면서 절대로 땀을 흘리는 일이 없었다. 나중에 효원씨는 전자는 power 추수로써 펑경을 배양하거나 증강시키기 위한수련 방법이고 후자는 power타수로써 발경을 포함해서 추수 하는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power 타수가 훨씬 힘들다고 하였다.

어쨌든 나는 계속해서 일요일만 빼고는 거의 매일 오후 4시 쯤에 효원씨랑 주사부님 태극권 클럽에 나갔고 효원씨가 수련하는 동안 5시간 정도를 도장안에서 주사부님의 태극권 전수 모습과 수련생들의 수련 과정을 거의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를 지켜보고나니 주 사부님이 수련생들을 가르칠때 수련생들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이 약간씩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특히 power타수/추수를 수련시킬 때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는걸 발견했다. 어떤 학생들에게는 power타수/추수 보다는 내가 보기에 훨씬 부드러워 보이는 즉 주사부님이 때때로 접촉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학생들을 밀거나 끌어당기는 마치 극이 다른 자석이 서로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자유자재로 일정한 거리 안에서 학생의 동작을 control하는 추수(공경)를 하기도 했다. 또한 power 타수/추수시 학생들의 반응 동작도 각양각색이었다. 어떤학생(김효원씨)은 주사부님의 몸 어느 부분에 상관없이 그저 손이 닿기만 해도 마치 용수철이 튀는 것처럼 정말 중국무협시리즈에서나 볼 수 있는것 같이 굉음이 들리면서 곧바로 뒤로 10m 이상 튕기면서 콘크리트 벽에 몇번이고 부디치거나(장경일 경우) 때로는 도장 바닥에 내동댕이처졌다(단경일 경우). 그때 나는 정말로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러자 주사부님께서 다른학생은 몰라도 효원씨는 괜찮다고 하셨는데 어쨌든 나는 반신반의했고 계속해서 걱정스런 모습을 보이자 나중에는 옆에서 수련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학생들이 “Kim, you can not train like this anymore.” 그렇게 말하면서 박장대소 하였다. 주사부님이 효원씨에게 power타수/추수를 할 경우에는 다른 학생들하고 할 때와는 달리 거의 동작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데도 효원씨가 그렇게나 멀리 튕겨나가는 것을 보고 정말 충격받았다. 어떤 학생들은 사부님하고 power 타수/추수 할 경우 굉장히 힘들어 보이고 경쾌하지 못하며 사부님의 힘을 이기기위해 용쓰듯이 소리를 내거나 미는 모습이 역력했고 뒤로 밀릴때도 매우 둔해 보였다. 또한 많은 학생들은 뒤로 내동댕이 처지는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몸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어 근육의 힘으로 사부님의 힘에 대적하는 것이 보였다. 아뭏든 자연스럽게 주사부님과의 power타수/추수 수련시 학생들의 반응의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라는 의문이 생겼으며 또한 공경은 어떤학생들에게 시범하는지 굉장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요즈음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는 간화식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주사부님은 효원씨하고 할 경우와는 달리 다른 학생들에게 power 추수를 할 경우 학생들로 하여금 한동안 계속해서 밀게 하는데 때때로 주사부님은 뒷다리를 도장바닥에 스치듯이 뒤로 살며시 빼거나 밀리는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른 학생들은 효원씨보다 훨씬 약해 보였는데 오히려 사부님이 밀리는 것처럼 뒷다리를 살짝 움직이는게 이상해 보여 효원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효원씨는 power추수는 펑경을 배양하고 증강시키는 수련 방법으로 사부님의 어깨에 양손을 모와 근육의 힘이 아닌 몸이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밀어야하는데 아직 펑경이 없거나 펑경이 있어도 약할 경우 힘의 세기가 집체만한 바위같은 주사부님을 밀기가 굉장히 벅차고 학생이 힘을 주어 밀면 밀수록 학생에게 느껴지는 힘의 강도가 더욱 세어져 이완된 상태에서 사부님을 미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학생이 그 한계를 넘으면 마침내 근육의 힘으로 자신도 모르게 밀게 되는 상태로 바뀌게 되는데 이순간에 사부님이 힘의 세기를 잠깐 끊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말해주었다.

학생들은 도장에 들어 오면 제일 먼저 나름대로 준비운동을 한다음 원기본태극권형을 수련했는데 수련생마다 약간의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태극권형 수련을 마치는데 20분 정도 걸렸다. 매일 도장에 있는 수련생들은 오후 7시 정도가 되면 주사부님의 아드님이신 Vincent씨 때로는 막내아드님 Gordon씨와 더불어 모두 같이 기본태극권형을 수련하는데 각자 자세들이 많이 달랐다. 특히 수련시 손의 높이, 팔꿈치의 굽히는 정도, 보폭의 정도, 상체의 자세등이 많이 달랐다. 동작의 방향은 같아도 신체의 부분들이 서로 조화되지 않는 수련생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효원씨의 태극권형 수련 자세와 다른 학생들과의 자세를 눈여겨 보면서 느낀바가 다른 학생들의 자세는 아직 무언가가 부족한 엉성한 면이 있는 반면에 효원씨의 동작에서는 무언가 강한 힘의 흐름이 태극권형 수련 전반에 걸쳐 느껴졌다. 당시에는 그것이 무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다만 효원씨의 태극권형 자세가 사부님의 막내아드님인 Gordon씨와 제일 비슷해 보였다는 점이다. 특히 인상깊었던 점은 주사부님은 교습시 태극권 원리에 관한 말씀이 거의 없이 직접 수련생의 손을 잡아서 원형을 그리듯이 기본태극권형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점이다. 원리에 대한 이해보다 먼저 자세를 익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는것 같았다. 효원씨에게도 태극장권 수련시 효원씨가 틀리게 할 경우 “No Good” 한마디였지 어떻게 해야 바르게 하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이 없으셨다. 말 그대로 망망대해에서 뜬구름 잡는 식이었다. 이것이 바로 정통양가 태극권에서 전수하는 방식인 30%의 가르침+ 70% 수련생 자신의 노력과 깨달음을 요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즉 선생님의 가르침도 중요하지만 그 가르침에 상응하기위한 수련생 자신의 각고의 노력을 요하고 사부님은 수련생의 수련 과정을 통해 수련생이 얼마나 열심히 올바르게(섣부른, 잘못된 생각에 의한 판단배제) 태극권을 연마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수련생의 인품과 자질을 파악하기 위한 의도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꼭 허준의 스승이신 유의태 의원님이 허준을 살펴보는 방법과 비슷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인내가 약한 학생들은 그만두거나 또는 다른 무술을 병행하면서 배우거나 여하튼 도장에 가면 자기 나름대로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에 근거해 이상한 형태로 수련하는 학생들도 눈에 보였다. 그러나 이상한것은 주사부님은 그런 학생들한테는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둔다는것이었다. 태극권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이상해 보이는데 사부님은 그들이 잘못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터인데 굳이 교정해 줄려고 하지 않으신 점이 매우 이상했다. 그래서 효원씨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 보았더니 모든 수련생들은 원 기본 태극권형 수련 과정이 끝나면 자세의 잘못된점을 교정받는데 사부님의 교습을 잘 이행하지 않는 게으른 학생들이나 혹은 다른 무술과 병행하는 수련생은 신의가 없으므로 굳이 정통 양가 태극권의 본질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볼 때 신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고 이에 당연히 인품, 자질을 고려한다고 하였다.

주사부님 도장에서 매우 인상적인 학생을 하나 보았는데 30대 종반으로 보이는 일본계 3세 여자로서 MIT 물리학(Plasma Physics)과 교수인 Linda Sugiyama 란 분의 수련 모습이었다. 키는 약156cm 정도이고 체중은 43kg-45kg정도 되어 보였는데 다른 문하생들과 power타수/추수 수련 하는 것을 보니 수많은 체격좋고 우락부락한 남자 문하생들이 그 연약한 Linda씨 앞에서 쩔쩔 매고 있었고 효원씨하고 수련할 경우에는 거의 백중지세였다. 특히 효원씨와 수련할 경우에는 이것은 수련이 아니라 실제 대련을 방불케 할정도로 매섭고 빠르고 정말 무술이었다. 그 느리기만한 태극권형 수련으로 어떻게 저렇게 매섭고 빠르게 힘을 낼 수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또한 Linda씨가 주사부님과 power 타수/추수 할 경우에는 효원씨의 경우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여자라서 그런지 power 보다는 그 속도가 태극권에 대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고 굉장히 그 움직임이 사나웠다. 정말 궁금했다.효원씨에게 Linda씨가 태극권 수련하는지 얼마나 되었는지 또한 사부님과 power 타수/추수시 그런 담력이 어디서 나오는 지를 질문했다. Linda씨는 효원씨보다 1년 먼저 도장에 들어와서 1995년 당시 15년째 태극권을 수련중이며 몸에 평경이 있고 그것을 control 할 수 있게되면 그 펑경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부님과의 power타수/추수시 그런 담력이 나오게 된다고 하였다. 위에서 잠깐 언급된 공경,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이것을 완벽하게 하시는 분은 주사부님만이 유일한 분이 아닌가 싶다(물론 주사부님의 둘째 아드님(Vincent Chu)도 때때로 학생들에게 시범하심). 효원씨가 말하기를 태극권에는 기의 단계,경의 단계,능의 단계가 있다고 주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마 주사부님은 능의 단계에 계신분이 아닌가 한다.

처음에 주사부님이 공경을 다른 학생들에게 행하실때, 내눈에는 정말 황당무개해 보였다. 생각해보세요. 주사부님은 만지지도 않는데 주사부님이 손을 위로 올리면 학생도 따라서 위로 뛰고 신체 부위에 손만 가까이 가면 만지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은 온얼굴에 인상을 쓰고 그부위를 튕겨내듯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어떤학생들은 아예 눈을 감은 상태에서 그런 반응을 하니 우리 상식으로 이해가 갑니까? 정말 사쿠라 집단 같았어요. 그런데 만일 이것이 가짜라면 어떻게 땀을 비오듯이 사부님의 공경 시연시 학생들이 흘릴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heating system도 작동시키지 않은 눈많은 보스톤의 그 한겨울에 말입니다. 정말 믿기 어렵지만 믿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었지요. 그래서 사부님과 공경를 했던 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떤느낌인지. (분명히 감으로 사부님의 기/경으로 학생의 기/경을 완전히 control 하시는것 같은데) 어떤분은 전기가 몸에 흐르는 듯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어떤분들은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듯한 느낌이라 하고 여하간 개인적으로 느낌을 다르게 표현하였다. 중요한 것은 주사부님의 가까이에 있으면 무언가 강한 힘이 있어 그 힘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것이었다.

주사부님은 power 타수/추수를 수련 받은 학생들에게는 반드시 참장공을 하게 했고 참장공이 끝나면 다른 수련생들과 더불어 반드시 손동작과 더불어 walking(오행보법)을 하게했다. 이때하는 walking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walking 이 아니라 walking 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빠르고 running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느린 일정한 방향에 따라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왜 사부님은 power타수/추수 후 꼭 참장공을 하게하고 참장공 다음에는 반드시 walking을 하게 하는지 궁금했고 이 세가지의 연결된 수련은 태극권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995년 7월 5일부터 첫아이 출산 전, 1996년 9월 19일까지 일요일을 제외한 거의 매일 5시간 정도 수련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태극권을 직접 수련 하지 않아도 누가 틀리게 하고 어느정도 태극권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수련생들의 수련과정을 보고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나도 모르게 같게 되었다. 특히 누가 펑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주사부님과의 power타수/추수 수련시 수련자의 자세나 반응을 통해서 펑경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안목을 갖게 된것이다.

특히 주사부님과 효원씨의 power타수/추수 수련은 정말로 볼 만한 도장의 구경거리였다. 이때에는 도장안의 모든 수련생들이 자신의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믿을 수 없다는 경이로운 표정으로 지켜보곤 했다. 효원씨는 주사부님의 몸에 손이 닻자마자 곧바로 10m 이상 튕겨나가 콘크리트로된 도장벽에 심하게 몇번이고 부디쳤는데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것은 펑경이 강한 사람일 수록 자신의 펑경의 힘에 의한 반동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었다. 즉 반동의 정도에 따라 수련생의 펑경의 유무및 강약을 분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벽에 부디칠때 몸이 경직되지 않은 이완된 상태이면 푹신푹신한 매트에 부디친것 처럼 그 충격의 여파를 심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효원씨가 말했다. 또한 펑경에는 幼경(약한펑경), 剛경(강한펑경으로 변화가 힘듬), 柔경(부드럽고 강한 펑경으로 변화가능), 空경(최상의 펑경으로 자유자재로 펑경 발휘)의 4단계의 평경이 있는데 펑경의 초보단계에 있는 유경(약한 펑경)이 있는 학생들에게 사부님께서 공경을 시연하신다고 하였다. 때때로 효원씨는 사부님과 봉을 이용하여 power타수/추수를 하곤 했는데 그반응 역시 매우 무서웠다. 펑경이 있으면 무기를 통해서도 언제든지 발경할 수 있다는게 조금은 두려웠다. 생각해보건대 여기에 바로 정통양가 태극권 전인들이 무술의 절정고수로 이름난 이유가 있구나 하는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었다.

보스톤이나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 August Full Moon Festival 이나 10/10 Chinese Independence Day 에 종종 각파 중국무술 시범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데 주사부님은 주로 효원씨와 power타수/추수 시범을 많이 하였고 그장면이 무술 잡지에도 소개 된적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주사부님 도장안에서는 주사부님과 둘째아드님인 Vincent Chu를 제외하곤 효원씨가 가장 펑경이 좋아보였고 효원씨를 뒤로 튕겨낼 정도의 펑경을 가진 다른 문하생들을 볼 수 없었다. 다만 Linda Sugiyama씨와의 power 추수시(실제 대련이나 마찬가지임)의 경우는 서로가 백중지세였다(현재는 다름). 주사부님은 종종 그 두사람의 추수를 볼 때는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때때로 많은 지적도 해주곤 하는 모습이 다른 문하생들을 대할 때 하고는 달라 보였다. 그것은 효원씨가 바르게 태극권을 연마하고 있고 사부님께 인정 받고 있다는 간접적인 표현으로 상당히 기뻤다. 중국인들은 중국인이 아닌 타민족에겐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주사부님은 그런것 보다는 수련생 자신의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주사부님은 한번도 다른 style의 태극권 (특히 진가권, 정자권,간화태극권) 에 대해 수련생에게 언급한 적이 없었고 그것에 대한 언급 또한 정통 양가 태극권에 대한 모욕이므로 사부님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다른 무술과 비교하여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금기 사항 이었다.

1년 2개월 정도 주사부님 도장의 수련 과정을 지켜보면서 운좋게 3번 정도 주사부님의 기본태극권형 수련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많은 태극권 수련생들을 보았지만 그런 모습은 본적이 없다. 평상시 주사부님의 모습은 외향으로 보아서 전혀 무술하는 사람의 체격이 아니다. 키는 상당히 작고 체중도 많이 나가 보이지 않고 배는 문외한이 보기에 똥배처럼 많이 나왔는데, 태극권형 수련시 그분의 모습은 키나 몸의 폭이 크게 팽창된듯이 커다란 풍선기 처럼 굉장히 커 보였다. 자세는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양식 태극권 자세가 아니었다. 등은 거북이 등처럼 넓고 둥그스름했으며 하체보다는 상체가 무진장 커 보였다. 옆모습은 정확하게 대각선이었고 앞모습은 그 방향을 향해 흐트러짐없는 정(일직선)자세였으며 꼭 사자가 먹이를 향해 점프할때의 모습처럼 날카롭고 무언가 꽉찬 굉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효원씨가 배꼽의 윗부분의 배가 나오면 그것은 똥배고 배꼽 아랫부분의 배가 나오면 단전이라고 하며 주사부님의 배는 똥배가 아니라 단전이 상당히 많이 나온 거라고 알려 주었다. 배꼽을 기준으로 윗부분의 배가 나옴과 동시에 fat의무게에 의해 배꼽 아랫부분으로도 살이 삐져나오는 똥배와는 달리 단전일경우 몸이 이완된 상태에서도 만져보면 탄탄하며 풍선처럼 팽창된 모습이라고 단전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주사부님의 모습을 보고 난 후 효원씨의 태극권형 모습을 보니 수련생들 가운데에서 사부님의 태극권형 수련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95년 9월 인지 10월 인지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씨애틀 University of Washington 체육관에서 제1회 전 북미주 중국 무술 쿵푸 대회가 USA 쿵푸 협회 주관으로 개최되었는데 그때 본인도 주사부님과 문하생(김효원, Linda Sugiyama, Sara Freed, Peter Hunt, Nick Snow, Phil Dea, etc.)들과 더불어 참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대회는 처음으로 주최되어서 그런지 구성면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보였으나 본인에게는 많은 다른파 중국 무술을 한꺼번에 볼 수 있었다는 면에서 정말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 대회에는 전미주에서 뿐만 아니라 Canada, Russia, Germany, Japan, China, Swiss, England 등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무술 시합에 앞서서 각파의 유명한 master 들의 시범과 외가권과 내가권을 구분하여 여러 그룹이 모여 관중에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외가권의 종류는 너무 많고 그것에 대한 지식이 얄팍하여 그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없었으나 동작의 속도와 변화는 현저하게 눈에 뛰었으며 동작의 변경때마다 내지르는 소리는 체육관이 떠나갈 정도로 컸었다는게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내가권의 경우는 양가 태극권, 진가권, 정자권, 간화태극권,형의권, 팔괘장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때 처음으로 태극권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왜 그렇게 자세나 모양이 다른지 궁금해서 주사부님께 물어 보았더니 아무런 말씀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심판관들이나 다른 master들이 주사부님에게는 매우 정중했고 예의를 다했다는 인상이었다. 그중에서도 주사부님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중하신 분이 계셨는데 효원씨에게 그분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더니 정만청 선생의 마자막 제자인 William Chen씨라고 하였다. 그분은 뉴욕에서 태극권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당시 주사부님은 참관만 하셨지 심판관이나 다른 자리에 않지 않으셨다. 또한 그때까지 주사부님은 매스컴을 통해 일반대중이나 무술 애호가 들에게는 잘알려져 있지 않으나 무술을 가르치는 많은 중국인 master분들은 그분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듯 했다. 그때 내가 본 진가권은 정통 양가 태극권과는 달리 동작이 굉장히 화려하고 허리의 움직임의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 소림권의 모습이 중간 중간 엿보였는데 동작은 화려하지만 무언가 태극권 내부의 일정한 흐름이 자꾸 끊기는것 처럼 보이고 다른 무술 과는 달리 태극권이라고 보기에는 소림권 같고 소림권이라고 보기에는 태극권의 모습이 보이면서 그들 고유의 독특함이 보이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형의권이나 팔괘장은 보법에 있어서 고유한 특징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정자권의 경우 그 자세가 꼭 노인들이 하는 것처럼 전체적인 모습이 축 늘어져 보였고 동작의 흐름은 일정해 보였으나 자세가 불분명하여 하나도 힘이 없게 보였다. 같은 태극권이라는데 정자권의 모습은 정말 이상해 보였고 흐느적거려 보여 어떻게 저런 자세와 속도로 power타수/추수를 할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외가권의 시합은 나중에 격투처럼 변했는데 장갑과 헬멧을 착용해서 그런지 내 눈에는 모두 kick boxing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말 시합은 서로 우승하기 위해 진지했고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정말 실전상황이었다. 이에반해 내가권의 시합의 경우 그 대련에 있어서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는데 우선 태극권형 자세의 정확도에 대한 심판의 판정은 통일되지 않아 중구난방 이었고 추수/타수 시합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주사부님의 문하생 중에서 체격이 제일 작은 필리핀계인 Nick(1995년 당시 6년째 정통 양가 태극권 수련 중)씨가 추수/타수부문에 출전했는데 상대방과 손을 마주한 상태에서 몇번의 준비 동작후 상대방이 Nick을 잡기전에 갑자기 단 한번에 심하게 내동댕이 쳤다하여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실격당(disqualified)했다. 당시 타수/추수 부문에 출전했던 모든 다른 선수들의 모습은 내가 주사부님 도장에서 보아온 power타수/추수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주사부님의 경우 Power타수/추수 수련시 절대로 상대방을 손가락으로 움켜쥐거나 주먹으로 치거나 과도한 손의 힘으로 잡아당기거나 밀치거나 한적이 결코 없었고 문하생들도 가급적이면 그런 동작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손목 부분에 스치듯이 손을 근접시키고 서로가 양손으로 끊임없는 원형을 그리거나 두손을 모와 사부님의 어깨에 대고서 power 타수/추수를 한다. 그런데 이 시합에 출전한 진가권, 정자권, 다른 태극권 수련생들 모두 손목을 잡아당기고 밀치고 다리를 심하게 움직이고 양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밀치고 밀고 등등 그야말로 다리만 걸치지 않았다 뿐이지 씨름/유도/레슬링 이나 마찬가지였다. 심판관들도 그게 태극권의 타수/추수라고 보고 있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랐다. Nick이 실격당한후 주사부님은 더 이상 학생들을 타수/추수부문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그 추수/타수를 보지 않았다면 진가권/정자권/ 다른 태극권 수련생들이 하는 것들이 태극권이므로 정통 양가 태극권에서 말하는 power타수/추수 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여튼 이대회는 나에게 중국무술에 대한 많은 식견을 갖게 해준 재미나고 귀중한 경험이었다. 외가권과는 달리 내가권의 경우 내공권법의 이해가 없는 분들이 내공권법의 심판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판상의 많은 착오를 가져왔고 내가권을 시합의 종목으로 택한다는 것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었다. 외형만 보고 판정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은 이미 내공무술이 아니라 시합용 전시 내가 체조로 보는게 더 타당할 듯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가권의 경우 전사경을 발출하기 위해서 허리 동작의 파동이 심하게 노출되는데 저렇게 씨름처럼 추수/타수를 한다면 그러한 식의 힘은 발출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정자권의 경우 자세 자체가 불안정하므로 그 힘을 내기 위해서는 정만청 선생처럼 손을 앞으로 길게 빼거나 상대방을 밀기위해 때로는 손이 어깨를 넘어 머리 위까지 올라가는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대회 이후 사부님은 저한테 딱한번 다른 태극권에대해 언급하셨는데 "Other style taichi , No power” (사부님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님)라고 지나가는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하면 우습게 들리겠지만 주사부님은 저한테 굉장히 호의적이셨다. 사부님은 영어표현이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효원씨의 잘못을 지적해 줄 경우 한자를 써서 주셨고 다행이 저는 법대를 나왔고 대학학부때 중국어를 1년 배운 경험 때문에 그 한문의 의미를 다른 수련생들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 효원씨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또한 깍듯한 인사성과 내가 한자를 잘 읽을 수 있고 짧은 중국어를 한다는 것이 사부님마음에 드셨던 것 같다. 또한 도장에 가보면 수련생들이 마시다 남은 컵들을 씻지않고 아무대나 놓아두어 지저분하게 하는데 그것을 그냥 두지 않고 깨끗하게 정돈하고 청소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좋게 보셨던것 같다. 그래서 늘상 저만 보면 한국여자는 참 예의바르고 심성이 좋다란 좀처럼 하지 않으시는 농담도 하곤 했다. 동양적 사고방식과 예를 굉장히 좋아하셨다.

1996년 말경 효원씨가 태극권 도장을 열고 싶은데 도통 사부님의 언질이 없으셔서 답답해 하였고 본인은 지금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태극권 도장의 개관과 그 미래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효원씨의 성격상 특히 운동에 있어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철처하게 훈련 시킬 것이고 과연 요즈음에 누가 그렇게 심각하게 그 훈련을 감당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 것인지 의문시되어 처음에는 반대를 하였다. 또한 사부님께서 도장을 개관 하라 허락 하셔도 보스톤에서는 개관할 수 없고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것 또한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러던차 1997년 여름 주사부님께서 뉴욕에다 도장을 한번 열어보라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허락이 떨어졌고 아직까지 주사부님께서 30년 넘께 수 많은 문하생들을 배출했는데 다른곳도 아닌 뉴욕에다 도장을 열어도 좋다는 허락을 하신 경우는 문하생 가운데서는 효원씨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고 그런점에서 효원씨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더군다나 뉴욕은 많은 유명한 무술도장들이 있고 특히나 정만청선생의 유명의 본산이고 정선생의 마지막제자인 William Chen씨가 오랫동안 태극권전수의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틈에 들어가 효원씨보고 정통 양가 태극권 전수의 둥지를 틀라는 것은 태극권 역사를 바로 잡으라는 의미인데, 효원씨의 실력을 믿지않고서는 행할 수 없는 사부님의 과감한 결단이었다.

1980년대 초 뉴욕에서 무술 대회가 열렸는데 그 때 주사부님께서 Michael Goon이란 문하생을 데리고 대회(Full Contact Tournament)에 참가하여 우승함으로써 주사부님의 명성이 높아졌으며 그런 이유로 특히 뉴욕에는 주사부님의 명성을 뒷받침할 만한 실력있는 문하생이 나올때까지 30년 넘게 기다려온 것 같다고 효원씨가 말하였다.

개인적으로 효원씨가 주사부님의 제자가 되면 무척이나 영광스럽겠지만 그런 바램은 어렵지 않을 까 한다. 그 이유는 사부님에게는 지금 현재 주사부님 다음을 이을 두 아드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은 효원씨는 문하생이므로 사부님의 원본 사진이나 기타 다른 정통 양가태극권 전인들의 원본 사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가 없다.. 제자가 되면 그런한 정통 양가 태극권 역사에 관한 원본 자료및 비디오 제작, 책의 출판등의 제반 사항에 관해 사부님으로부터 많은 권리를 이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효원씨가 Internet 상 자신의 site에 사부님의 사진을 올렸었는데, 사부님이 이것을 아시고 도장에서 그때 저도 옆에 있었는데 민망할 정도로 질책을 하셨다. 아직은 안된다는 의미였다. 사부님은 정통 양가 태극권에 대한 원본사진이나 자료들이 학생을 가장한 사기꾼에 의해 진정한 태극권 전수 자체보다 돈을 벌려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정통 양가 태극권 역사를 보면 그런 인물이 있는 전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정말 정통 양가 태극권이 왜 그동안 다른 양식 태극권이나, 정자권, 진가권등에 비추어 보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는지 또한 다른 태극권과는 달리 쉽게 매스컴(비디오제작) 이나 책을 통해 태극권을 보급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재미 있는 것은 현재 알려져 있는 태극권에 대한 유래나 원리등에 관한 정보들은 진가구에 중점을 둔 거의 대부분 중국본토에서 나온 진가권자, 정만청 선생을 비롯한 정가권자, 기타 다른 태극권자 들에 의해 알려진것들 뿐이며 정작 태극권을 유명하게 만든 정통양가태극권 전인들은 아무런 상관 없다는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점이다. 물론 양징보 태사공님께서 정통 양가 태극권 기본형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담은 책을 만들기는 했지만 다른파 태극권자들 처럼 태극권에 대한 많은 사항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같은 중국인들끼리 논쟁하는것을 피하고자 하는 소극적 대응인것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40년 가까이 정통 양가 태극권을 전수하고 계시는 주사부님의 경우 한번도 태극권에 관한 책을 출판하지도 않았고 비디오 제작도 하지 않으신 점은 지금의 많은 다른파 태극권자들이 태극권의 대중화/보급이란 명목으로 우후죽순격으로 너나 나나 할것없이 책을 쓰고 비디오를 제작하여 많은 돈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다시한번 지금의 추세를 깊게 성찰해 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주사부님은 간접적 방법(책/비디오)보다는 주사부님을 초청해서 직접 정통 양가 태극권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문하생들을 방문(영국, 독일, 동유럽등)해서 직접 전수하시곤 한다. 요즈음에는 연세가 있으므로 주로 둘째 아드님인 Vincent Chu씨가 그 일을 담당한다.

따라서 지금 한국뿐 아니라 세계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태극권에 관한 많은 일들은 옆에서 지켜본 주사부님의 철저한 태극권 전수 방식이나 계보유지의 철저함에 비추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 뿐이다. 태극권을 배우고자 하는 많은 태극권 애호인들에게 실망스럽게 들리겠지만 정통 양가 태극권은 진정한 사부님의 직접전수가 아니면 그 진수의 전승이 불가능하며, 어찌보면 태극권을 책이나 비디오를 통해 배운다는것 자체가 그 본질을 망각한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단지 내공무술로써가 아닌 가벼운 운동으로 태극권을 수련 하고자 하거나 체조처럼 외형적인 태극권형의 동작의 모방만을 원한다면 어떤형태의 태극권이든지 간에 간접적 학습(비디오나 책)방법을 통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될 수 있다고 본다.

학교 다닐때 수학에 대해서는 honor class 에 속할 만큼 능숙했던 효원씨는 종종 태극권을 인간이 만든 가장 과학적(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이면서도 순리(자연)적인 예술의 하나라고 말한다. 19년동안 태극권을 연마하고 있지만 수련하면 할 수록 인간의 몸이 발할수 있는 힘의 무한대성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태극권은 자기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을 요한다고 한다. 만일 태극권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눈에 보이는 성과에 조급해 한다면 태극권을 배울 기본적 소양이 갖추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며 태극권을 배울시 요구되는 선결조건은 바로 인내라고 하였다. 태극권은 평생에 걸쳐 수련되는 인생의 과정이고 목표이지 절대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정도 되고보니 저도 효원씨와 더불어 벌써 태극권에 관해 사쿠라(????)가 다 된 듯 하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정통양가태극권에대한 수련과정을 몸소 지켜보고 느낀 저의 경험담을 미진한 글 솜씨로 두서없이 써 보았습니다. 저의 글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으실 분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부족한 저의 경험담이 여태까지 태극권을 수련해온 자기자신을 다시 한번 성찰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해 주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감사드리며 또한 태극권에 관심은 있으나 아직 태극권을 접해보지 못한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글을 써 보았습니다.

두서없는 장문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태극권에 열정을 가진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좋은 포도열매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00년 9월 20일

Written By 김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