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 Won Tai Chi Institute

정통양가태극권과 진가권과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서

 

진가에서 주장하듯이 만일 양가태극권이 진가권에서 비롯되었다면 동작이나 권법의 요결상 상호 유사한점(양가태극권에서 파생된 오가태극권은 상당히 상호 유사함)이 많이 있어야 하는데, 사용되는 구결의 명칭이 동일하다 해도 그 이해와 실행되는 동작이 전혀 다르니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진가에서 보여지는 동경추수(마치 씨름과 같아보임)는 양가태극권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고 또한 그 실행상 태극권 내공권법의 요결과는 정반대이니 이것 또한 무슨 이유 때문일까?

태극권의 유명은 양가 태극권의 창시자인 양로선 조사의 무술의 경지에 대한 찬탄을 확인하기 위하여, 당시 북경이 도읍지인 청왕조의 초청으로 각파에서 파견된 고수들을 물리쳐 "천하 무적"(19세기 중엽)이라는 이름을 떨친후 시작되었는데, 진가의 주장대로 양로선 조사께서 진가(태극?) 권을 수련했다면 어떻게 진가권에 존재하는 동경추수(씨름같아 보이는)가 어찌하여 양가 태극권에는 실존하지 않을까?

또한 그 당시 중국에는 무림의 수 많은 고수들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해서 씨름처럼 하는 내공(?)무술로 여러파의 그 고수들을 대파하고 천하무적이라는 유명을 얻었을까?

양로선 조사님이 진가촌에서 무술을 수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태극권의 본산은 진가촌이라는 진가권자들의 주장은 태극권의 유래나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비유일런지 모르나 김대중 대통령이 해방 후 혼란기에 청년건국 준비위원회에서 잠깐 일했던 전력은 정적에 의해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왔던가! 그런 사실은 무지한 대중들에게 제대로 잘 먹혀 들었음은 그 시대를 경험한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정작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부친 당사자인 고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동료를 배신한 공산주의자였지 않았던가?

진가구의 생업은 농업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씨름도 농부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쩌면 어느 한국인의 진가구 방문기에서 처럼 "언뜻 씨름 같이 보이는 동경추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 고유의 무술인 진가권(혹자는 소림포권이라함)의 존재는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진가권이 정말로 진가권자들이 주장하는 바 대로 내공무술인 태극권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혹스러운 점이 많다.

솔직히 말하여, 진가권자들이 양로선 조사님의 유명과 상관없이 스스로를 진가태극권이라고 명명했다면 본인은 다른 많은 무술도장들이 태극권에 무지하면서도 단지 천천히, 부드럽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태극권에 무지한 혹자들을 태극권이란 이름으로 현혹시키듯이 그냥 그렇게 그럴수도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만청이 본인스스로를 양징보태사공님의 유명을 팔아 양가태극권의 4대 전인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사실처럼 유포시켜 태극권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것처럼, 진가권자들 역시 양로선 조사님의 유명과 진가촌에 있었던 전력을 빌어 태극권의 유래가 마치 진가구에서 비롯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이 현실을 개탄하며 양가태극권의 유래와 역사, 권법을 정확히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알고 있는 사실과 왜 진가(태극권?)권이 태극권이라고 불리는대 무리수가 따르는지 이 고마운 Internet (Internet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름)을 통해 알리고자 한다.

양로선조사님은 진가촌에 하인으로 들어 갔다. 하인이었던 양로선 조사님은 진가들이 수련하는 진가권을 배울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했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수면에 취한 밤 삼경이 넘었을 쯤 진장흥이 진가들이 전통적으로 수련하는 진가권이 아닌 전혀 다른 초식의 무술을 수련하고 있음을 보게 되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양로선 조사님은 진장흥으로부터 이 무술을 사사받게 되었다. 당시 양로선 조사님은 이 무술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어느파 무술인지 그 이름도 몰랐다한다. 단지 아는 것은현대의 진가권자들이 가설이라고 주장하는 사실, 즉 장발이란 고인이 이 무술을 우연한 기회에 아무도 모르게 진장흥에게 가르침을 주었다는 것이다. 진가권자들은 9대 진왕정이 태극권을 창시했고 14대인 진장흥이 태극권을 완성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 정통 양가 태극권 자들은 진장흥이 우연한 기회에 장발이란 고인으로부터 이무술을 배웠고 이것이 양로선 조조사님에게 전해졌다는 것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만일 진장흥이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전통적인 진가권을 수련했다면 밝은 대낮도 아니고 초저녁도 아닌 깜깜한 야심한 밤에 어찌하여 남 몰래 수련하고 있었을까?

아무리 숨겨둔 비기를 수련한다 해도 그것이 가문의 절기인 진가권이었다면 꼭 남의 눈을 피해 그것도 농촌에서 그 시각에 수련해야 했을까?

아니면 그 시각에만 수련해야 하는 남 모를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당시 진장흥의 위치로 보아 가문의 절기인 진가권이 아닌 다른 무술을 공공연히 한다는 것은 곧 진가권을 만인앞에 욕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라는게 우리 양가 태극권자들의 정설이다. 양로선 조사님이 진가촌에서 무술을 연마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무술이 진가권은 아니라는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이무술의 정확한 명칭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그 무술이 진가구의 숨겨진 비기로 장문인들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어서 일반인이 볼 수 없도록 그 야심한 시각에 수련 해야만 했다면 왜 진장흥은 그 중요한 비기를 진씨문중 사람도 아닌 양씨에게, 더구나 하인한테 가르침을 주었을까?

본인이 알고 있기로 진가내부에서 본디, 진장흥은 대단한 실력가로 인정 받지 못했으나 후세 양로선 조사님의 유명때문에 그의 이름이 재 거론된것으로 알고있다.

만일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14대 전인 진장흥이 처음으로 외부인인 양로선 조사님을 제자로 받아들이면서 진씨가 아닌 외부인들에게도 진가(태극권?)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고 본다면, 당시의 풍토나 관습상, 진가손이 절손되지 않는 이상 다른 진씨들 조차도 볼 수 없도록 그 야밤에 수련했던 가전의 절기를 어떤 이유로 그것도 하인인 양로선 조사님에게 남몰래 가르치고 제자로 삼았을까?

무인에게 있어서, 한파의 수련생으로서 제자(disciple)가 된다는것은 영광인 동시에 장문인과 더불어 본파 무술을 적통적으로 유지, 발전, 전파 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따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양로선 조사님이 14대 전인 진장흥의 제자였다면 무술의 메카인 북경에서 그의 무술을 진가권이라고 왜 칭하지 않았을까?

또한 진가권이 천하무적의 최고권법인 태극권이라면,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진왕정의 진가 태극권 창시후 진장흥까지 5대가 지나는 동안에 굳이 양로선 조사님이 아니어도 그 권법의 유명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고 많은 다른 파 (예컨데, 소림파, 무당파, 아미파등등) ,무술인들이 그권법을 몰랐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청왕조 주최의 각파 무인들과의 대련을 통한 양로선 조사님의 북경에서의 무술 시범을 많은 무술의 대가들이 목격하고서도 왜 그들은 양로선 조사님의 권법이 어느 파이고 그 권법의 명칭 조차도 알지 못했을까? 양로선 조사님이 진장흥의 제자였다면 북경에서 다른파 무술의 고수들이 양로선 조사님의 권법에 대한 찬사로 천하무적의 권법이란 의미의 태극권이라고 칭했을 때 왜 양로선 조사님은 진가(태극?)권이라고 알리지 않았을까?

일반 문하생도 아닌 제자였다면, 중국의 관습상 본파 무술을 부정하고 본파 무술을 그것도 새로운 이름으로 개명한다는 것은 신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중국인들 특히 무술인들사이에서는 절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그런 일이 다른 무술인들에게 알려지면 양로선 조사님에게 어떤일들이 발생했을지는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당시에도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또한 다른 파 무술인들 조차도 양로선 조사님은 많은 무인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다. 오히려 진가권자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양로선 조사님은 진장흥의 제자 이면서 감히 가전의 진가(태극?)권 을 부인하고 사부님을 욕되게 한 파렴치한 인데도 양로선 조사님을 비난하고 제명하기 보다 그의 유명을 인정하면서 그의 유명의 덕을 보려고 하는 것을 보면 같은 무인으로서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태극권의 유래에 대해서 혹자는 장삼봉이란 도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나 확인 가능한 것은 아니다. 확실한 것은 태극권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양로선 조사님의 무술실력에 탄복한 당시 북경의 무인들에 의해 "천하무적"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상승권법이란 호칭으로 "태극의 권"이란 말이 생기고 그 존재가 사람들 사이에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태극권이란 상상의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적인 무술로 생각되었었다.

태극권에 대한 정의는 크게 두가지 시각에서 접근 가능하다. 첫번째는 흔히 대중들이 알고 있는 철학적 견지에서 보는 것으로 도교(Taoism)의 태극사상을 토대로 하여 태극(Great Ultimate)이란 우주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근본원리로 음(yin)과 양(yang)의 조화를 의미하며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고 이것이 다시 팔괘,64,삼라만상으로 변화한다는 사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무술로 보는 측면이다. 두번째는 글자 그대로 무술 권법적 입장 에서 본 더 이상 도달 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하무적의 최상승의 권법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경에서 청왕조와 다른파 고수들이 양로선 조사님께 부여해준 태극권이란 명칭은 전자의 의미보다 후자의 의미로써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당시 청왕조와 다른 파 고수들은 양로선 조사님이 보여준 그 권법에 대하여 무지했기 때문에 전자의 의미로써 태극권을 뜻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태극권은 권법이 매우 심오해서 단번에 동작을 보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앞에서 언급한 철학적의미의 태극권법을 이해하기란 진정한 올바른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장삼봉 도인이나 양로선 조사님 같은 절세 귀인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철학적 의미에서 바라본 태극권은 양로선 조사님 이래로 도대체 어떤 권법이길래 그렇게 천하 무적의 권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권법의 토대는 무엇일까에 대하여 후세인들이 부단히 연구한 결과론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태극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학적의미에서의 음양이란 말만 연상하여 태극권에 관한 모든것을 음양에 근본을 두고 이해 하려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사이비 태극권이 생겨나기도 한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음양의 조화만 생각한다면 당시 북경의 무인들이 음양검처럼 음양권이라 칭했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태극권이라고 하였을까?

태극권법에 있어서 음양의 적절한 조화는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어떻게 해서 태극권이란 말이 사용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한다. 태극(Great Ultimate)권이란 인간으로서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천하무적의 최상승의 권법이란 찬탄의 말로써 양로선 조사님의 무술권법에 청왕조와 다른 무인들이 명명해준것이다(어떻게, 감히 무술인들의 mecca인 북경에서 본인스스로 자신의 무술권법을 천하무적의 최고 권법이란 의미의 태극권이라고 이름할수 있겠는가? -양로선 조사님이 직접 명명한게 아님)

혹자는 진장흥이 수련한 그 무술은 진가(태극?)권에서 현재는 실종된 가전의 비기인 노가식이라고 주장한다. 이것 또한 이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오랜세월이 흘러도, 전쟁으로 인해 한꺼번에 진가권의 실력자들이 사라졌다는 상황이 아니라면, 진가 내부에 누가 보아도 그렇게 완벽한 계승체계의 계보를 갖추고 있는데, 그렇게 중요한 가전의 비기를 실종 시킬 수 있을까?

이로써 이름없는 무명권이 양로선 조사님의 유명으로 진정 태극권으로 거듭난 것이다. 즉 양로선 조사님이 실존하지 않았다면 태극권이란 장삼봉 도인의 경우처럼 확인 불가능한 하나의 상상적 이야기로 전락 했을 것이다.

진정뢰나 진가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왕정이 소림사로 피한 적이 있고, 소림사에서 소림권을 배우고, 그후 진가촌으로 돌아와 도가의 여러 지식과 합쳐 새로운 권법을 창조 했다고 한다. 잘 새겨보면 이 스토리가,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장삼봉 도인의 스토리가 아닌가?

진가(태극?)권가는 달리 양로선 조사님으로 부터 현대의 주진순 사부님에게 이르기까지 양가태극권법은 적/정통적 인 계승방법으로 권법(초식의 생략/실종/창작/다른파 무술 도용등)에 어떤 변화도 없이 시종 동일하다. 다만 3대 전인 양징보 태사공님의 경우 5만명에 달하는 문하생들을 보다 용이하게 가르치기 위해 많은 부분을 생략 했는데, 그분께서 일반 문하생에게 수련시켰던 것은 태극권형 가운데 가장 쉬운 학형 대가식이었다.

/정통 양가 태극권에 무지한 어느 진가권자는 적/정통 양가태극권 전인들의 표면적으로 보이는 태극권 형의 다소의 차이(예를 들어 혹자는 "소가좌, 중가좌, 대가좌"로 표현하기도함)를 들어 적/정통 양가태극권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이 태극권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거나 아니면 태극권법의 이해가 얼마나 초보적인 수준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양로선 조사님때부터 적/정통양가태극권에는 3(//)이 있고 이와 더불어 수련하는 대//소가식이 있다. /정통 양가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정통 양가태극권역대 전인들이 한가지 형으로만 수련했을리는 만무하다. 즉 학형으로 대//소가식, 호형으로 대//소가식, 사형으로 대//소가식으로 적/정통양가 태극권 수련자는 이모든 형에 정통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사진상 또는 그림으로 보이는 양가 태극권 역대 전인들의 태극권 형의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양가태극권 역대 전인들의 외부로 보이는 태극권형의 차이만 보고 그 안에 있는 내공 권법(펑경)을 보지 못한 진가권 수련자인 어느 혹자는 양가 태극권형에 많은 변화가 생긴것으로 주장하며 , 또한 양로선 조사님이 원 진가(태극?)권을 많이 변형했다고 한다. 본인이 적/정통 양가 태극권에 무지했다면 그 주장을 수긍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양가 태극권이 진가권에서 파생된 것이라면 본디부터 존재해 있는 양가 태극권형의 3(//사형) 과 그와 더불어 수련되는 대//소가식을 그들은 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그들의 주장대로 라면 진가(태극?)권은 아버지고 양가태극권은 자식인데, 아버지도 알지 못한것을 어떻게 자식에게 전해주었을까?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양로선 조사님이 원 진가(태극?)권을 많이 변형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몇대에 걸치지 않고 조사님 1, 그 단기간에 많은 변형을 이루어냈을까? 진가(태극?)권의 경우, 9대인 진왕정에서 부터 14대 진장흥에 이른 5대에 걸쳐서 진가(태극?)권이 이루어졌다 하는데 이에비하면 우리 양로선 조사님은 천재중의 천재, 귀재중의 귀재가 아닌가?

진가권자들의 주장대로 양가 태극권의 모체가 진가(태극?)권이라면 양가태극권법에 대해 정통해 있어야하고, 변형이 있다면 어느 부분이 어떻게 변형된것인지, 그변형이 태극권법 (principle)에 상응하는지의 여부 등을 알고 있어야하는데, 양가 태극권에 대해 특히 태극권의 핵심인 권법 (펑경:요즈음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붕경을 의미하지 않음)에 있어서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이며, 그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두 양로선 조사님이 변형시켰다는 변명으로 대처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양가에서 파생된 오가 태극권에 대해 적/정통 양가 태극권자 들은 무엇이 다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오가 태극권은 양가 태극권에서 비롯되었는데, 어떻게 해서 오가 태극권이 생겨나게 된것인지 적/정통 양가태극권자에게만 알려져 있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선 조사님이 청나라 귀족(만주족)인 전우(Chuan Yu-全佑) 에게 태극권을 가르치자 아드님인 양반후 조사공님이 "한족이 아닌데, 태극권을 왜 가르치십니까?" 하고 반대를 했고 이에 대해 양로선 조사님이 "나도 타인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에게도 태극권을 전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양로선 조사님의 말씀은 곧 진장흥이 수련했고 양로선 조사님께 전수하신 그 무술은 진가촌에서 수련되는 그들만의 가전비기인 진가권이 아니라 진가권자들이 가설이라고 주장하는 "장발이란 고인이 진장흥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이 가설이 사실임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즉 진장흥은 자신이 그 야심한 시각에 수련한 그 무술이 진가구 대대로 내려오는 진가 고유의 무술이 아닌 타인의 무술이었기 때문에 양로선 조사님께 전수하신것이다.

본인이 1980년대 초 양가 태극권을 주진순 사부님에게 배우기 시작 할 무렵, 진가권자들에게서 진가( 태극?)권에는 노가식과 신가식이 있는데, 노가식은 더이상 실전되지 않는 것으로 들었는데, 어찌하여 실종된 노가식이 지금에 와서 다시 등장했을까?

진가권에는 본디 "펑경"이란 말이 없고 전사경이란 말을 쓴다. 그러나 적/정통 양가태극권에는 전사경이란 말 자체도 존재하지 않거니와 진가권자들 처럼 전사경과 펑경을 비교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내공무술인 태극권이 외공무술(소림권, 당랑권, 영춘권, 백학권, 홍권, 태권도, 공수도, 합기도등등)과 확연하게 구분 될 수 있는 것은 "펑경"의 유무에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아 태극권형 같이 보여도 그 안에 "펑경" 이 없으면 더이상 그것은 태극권이 아니다.앙꼬없는 찐빵처럼 모방에 불과한 가짜 태극권이다.

대대로 적/정통 양가 태극권에서는 부단히, 초지일관하게, "펑경"의 중요함을 언급하고 강조해 오고 있다. 내공 무술인 태극권, 즉 천하무적의 권일 수 있느냐는 이 평경의 유무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로 양로선 조사님을 비롯하여 양가의 역대 전인들이 무술의 절정고수로 이름난 까닭이 있는 것이다. "펑경"이 있어야만 적과 싸울때, 적의 신체적우세나 표피적인 힘의열세에 좌우받지 않고, 외공무술과 달리 근력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장시간의 오랜 대련에도 쉽게 지치지 않기 때 문이다.

또한 과거에는 진가권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펑경"이란 말을 근래에 들어와 진가권자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어찌된 영문일까? 펑경도 실종되었다가 다시 나타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태극권의 가장핵심인 펑경까지도 실종되었었다면 진가권에 남아 있었던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양가태극권에 비해 진가권은 그 비기를 자주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가 하니 진가권자들이 자랑하는 오랜 계보는 무용지물이 아닌가? 계보는 태극권법의 적/정통 전승 역사를 말하는데............

양가태극권의 모체가 진가권이라면 진가권에도 동일한 내공권법이 있어야할 것이고, 그랬다면 진가권자 가운데서도 다른 무인들에 의해 무술의 달인, 절정고수로 불리울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양가 태극권이 진가( 태극?)권에서 파생된 것임을 주장하기 위해 진가권자들 스스로 몇분을 고수로 칭하고 있는 실정이다.

1920년대 이전,중국에서는 태극권이란 하나의 명칭만 있었고 그 태극권은 현재의 적/정통 양가태극권만을 의미했다. 1920년대 이후부터 오가등 다른 태극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특히 적/정통 양가 태극권 계승자(전인=successor)가 중국본토에 한명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에서 중국의 문화혁명이후 진가(태극?)권이란 이름이 나타났으며 그 이후부터 중국정부의 후원으로 진가 태극권이 중국본토에서 진정한 태극권은 진가(태극?)권이라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정책적으로 진가촌을 태극권의 본산으로 하여 관광지화 함으로써 태극권에 무지한 수많은 혹자들을 불러들여 외화 획득에 일조를 하고 있다. 역사란 정적이 없거나 그 정적의 힘이 약할때, 정치적 힘을 가진자에 의해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은 (특히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중국 문화 혁명 기간 동안에는 공산당에 반대하는 무술인들의 단합을 저지하기 위해 어떤 무술도 할 수 없도록 중국공산당이 무술 수련을 전면 금지하였고 이 기간을 무술인들은 무술의 단절기/ 암흑기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양수중사공님은 1929-1949년 사이 중국 공산당파의 적인 장개석 국민당지도부의 무술지도를 하고 있었고 그때문에 국민당 패배후 공산당의 암살/처형을 피해 홍콩으로 피난한 것이다. 양가 태극권 수련자가 중국 본토보다 해외에 더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아직도 그들은 중국본토 보다 여전히 대만을 지지하고 있다. 본인의 솔직한 견해는 적/정통 양가태극권과 진가(태극?)권 과의 이상한 관계는 태극권의 진정한 역사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정치적 힘에 의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태극권의 역사를 고찰할 때 태극이란 어휘만 보고 그에 연상되는 동양사상인 철학적 의미에서만 접근해 본다면 진가권자들의 주장은 진실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적/정통 양가 태극권과 진가권과의 이상한 관계는 역사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본토인이나 태극권의 진정한 역사를 모르고 태극권에 접하는 초학자에게는 대외적으로 어떻게 보면 너무나 완벽한 계보와 설득력 있게 들리는 진가권자들의 주장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본토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권법의 진수를 전수함에 있어서 고집스러운 보수적, 정통적 방법(30%의 가르침+70%의 수련생의 각고의 노력=100% 천하무적 태극권 성취) 을 고수하고 있고 중국본토에서는 알 수 없는,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숨겨진 진실들을 알고 있는, 해외에 분포된 적/정통 양가 태극권 수련자에게는 진가권자들의 상대적으로 너무나 완벽한(?) 그들만의 주장에 너무나 많은 허점이 보인다는 것이다.

/정통양가 태극권자들은 보통 태극권을 언급할 경우 다른 태극권 수련 접근 방법과는 매우 다르다. 철학박사가 아니면 이해 하기 어려운 수려한 미사여구를 동반한 철학적 의미에서 태극권을 이야기 할 경우 태극권을 배우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을 태극권에 대한 환상 이나 미혹에 빠뜨릴 우려가 있고 또한 태극권법의 이해에 있어서 그 근간을 이루는 철학적 의미의 음양의 조화에 대한 인지는 매우 중요하지만 실제로 태극권법 수련시 그 이해와 실행에는 생각이상의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태극권에 대한 확실하지 않은, 도리어 방해가 될 지 모르는 잡다한 생각은 배재하고 무술적 입장에서 본 태극권법에 중점을 두고 수련한다.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무념무상의 상태하에서 가장 훌륭한 태극권 수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행 보다 동작하나 하나 마다 머리로 이해하는 생각이 앞설경우 이미 몸은 긴장해지고 태극권 수련시 가장 배재되는 근육의 힘을 쓰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어떤상대를 만나든간에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권법(펑경)을 자유 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야 천하무적의 권, 태극권이 되는 것이다. 태극권 수련시 모든것을 먼저 머리로 이해하려 하고 분석하려고 하는 사람일 수록 태극권의 진보는 굉장히 느리다는 것이다. 그런이유로 적/정통 양가 태극권을 배우다 중도 하차한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을 본인은 알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양가 태극권 수련자는 많으나 그 수에 비례해 실제로 태극권법의 진수를 알고있는 적/정통 양가 태극권자가 20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적/정통 양가 태극권 수련자들은 진가(태극?)권자들이 가설로 여기는 장발이란 고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고 양로선 조사님이 진가촌에서 진장흥노사의 가르침을 받은 것 역시 인정한다. 즉 진장흥 노사가 양로선 조사님에게 가르쳐준 그 무술은 당시 많은 진가들이 수련했던 무술(진가권이라 칭함 )과는 절대로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진가권자들이 그들 스스로 진왕정 노사가 진가( 태극?)권을 창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양로선 조사님은 무에서 유의 존재로 태극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이름없는 형태로 존재해온 무술을 양로선 조사님의 부단한 수련, 권법에 대한 남다른 깨달음등 각고의 노력을통하여 그 무술의 위력이 천하 무적임을 만 천하에 알림으로써 이름없는 무명권을 태극권으로 거듭나게 한데 대해, 많은 다른 무인들은 그를 진정한 의미의 태극권 창시자(당시 양가, 오가, 무가, 손가, 진가라고 구분되지 않는 하나의 권법의 명칭)라고 한 것이다.

진가권자들이 적/정통 양가 태극권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양로선 조사님이 원 진가권의 격한 부분을 많이 삭제하고 형을 많이 변형했다고 하지만 진가권자를 제외한 다른파의 많은 무술인들은 현대의 진가(태극?)권은 소림권에 태극권을 혼합한 것이라고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로 태극권을 처음 접하는 분들의 이해(특히 태극권의 전승 계보및 그 진위의 판단)를 돕기위해 무술인들이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장문인, 제자, 문하생' 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별되는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문인이란 본파 무술의 적통 계승자로써 본파무술의 계승, 유지, 발전, 보급및 본파 무술에 관련된 모든 사항을 대내외적으로 관장하는 본파의 최고 실력자를 말한다. 전인이나 계승자 모두 장문인을 칭하는 또다른 말인다. 영어로는 "successor"로 번역된다. 장문인은 일반적으로 동일한 성씨의 가문에서 무술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자가 승계받으나, 절손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제자를 받아들여 그들 가운데서 무술 실력과 인품이 훌륭한 자를 장문인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 장문인은 유일한, 한사람만이 계승받는다.

제자란 장문인을 도와 본파무술의 계승, 유지, 발전및 보급의 책무를 감당하는 문하생 가운데 최고 실력자를 말하며 장문인 부재중 본파무술과 관련한 제반사항들을 담당 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disciple"이라고 번역된다. 수많은 문하생 가운데 오로지 몇명만이 제자가 될 자격을 얻는 영광을 갖게된다. 양수중 사공님은 수많은 문하생 가운데 단지 3명의 제자(엽태덕/홍콩거주, 주진순/미국 보스톤 거주, 추킹홍/영국 거주)만을 두었다.

문하생이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수련생, 연습생, 학생등 이모든 말들을 총칭하는 말로써 장문인과 제자의 가르침에 절대 따라야하며 제자만큼의 책무는 부과되지 않는다. 영어로는 "student"로 번역된다. 세계도처에 수많은 태극권 수련생들이 있다.

한국의 많은 무술site를 방문해 보면 제자와 문하생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그 용어를 남용하고 있는 것이 종종 발견된다. 모든 문하생이 제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사방천지에 온통 제자들만 난무하는 형국이 된다.(배는 하나인데 사공은 너무나 많으니 배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누가 진정한 사공 일까? 거참 난제중의 난제일세!) 중국무 인들에게 있어서 제자와 문하생의 의미는 분명하게 구별되어 사용된다. 적통계보에 의해 태극권법의 진수를 전수받는 적/정통 양가 태극권자는 절대로 1년 내지 2년같은 단기간의 수련으로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태극권은 절대로 단기간에 성취 불가능한, 평생에 걸쳐 수련해도 그 성취가 어려운 심오한 권법이므로 만일 그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태극권을 가르칠 자격을 그렇게 단기간에 쉽게 얻는 것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적/정통 태극권이 아니라 상술에 근거한 사이비 태극권이라고 감히 단정한다.(16년이 넘게 주사부님 지도하에 수련하고 있는 본인도 제자가 아니라 아직도 사부님의 수많은 문하생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 다만 다른 문하생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사부님으로부터 직접 적/정통 양가 태극권을 가르쳐 좋다는 허락(정통적 전수 방법)을 받고서 도장을 개관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 속담에 있는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란 표현을 상기해 볼 때이다. 태극권은 맣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환상적인 건강체조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담보로 수련하는 내공무술이라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기와 경을 잘못 운용할 경우 그 결과가 다른 곳(재물이아님 )도 아닌 우리 몸에 어떻게 생기는 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고자 한다(참고로 기가 넘치면 불면증, 가슴답답증세, 과잉 신경반응등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남)

다음호에는 적/정통 양가 태극권과는 달리 진가권이 왜 태극권이 아닌지 상호 권법의 차이에 대해 고찰해 보겠습니다.

written by 김효원

edited by 김유진


200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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